[경제] 서양은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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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지난 두 세기의 대호황(Great Enrichment)에는 한 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바로 보통 사람이 경제 향상의 꿈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이다.
by Deirdre N. McCloskey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 동상
사진: Alamy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부유한가?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5만 4천원을 번다. 이 수치는 미국을 통계 순위표의 정상에 올려 놓았다. 중국과 인도의 경우, 이미 수십 년 전에 하루 1천원이라는 심각한 사회주의에서 벗어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하루 2만 4천원과 1만 2천원에 머물러 있다. 무역 분야에서 입증된 경제 향상을 몇 세대 더 지난 이후에는 이들 국가도 부유해질 것이다.
(역주: 이 기사에서 미국 달러로 표기된 금액은 기사 송고일 기준 환율로 변환되고, 적절히 반올림되었다. 1달러와 같은 일부 상징적인 수치는 정확한 값으로 변환하기보다는 1천원과 같은 동일하게 상징적인 값으로 변환하였다.)
사실상, 오늘날 비교적 풍요로운 "우리"에는 애석한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포함된다. 두 세기 전만 해도 세계의 일인당 평균 수입은 (현대 가격 체계로) 하루에 약 3,500원이었다. 이 수치는 인류가 동굴에서 살았던 시대 이후로 계속 그래왔다. 현재는 하루에 4만원인데, 이 수치는 브라질의 현재 수준이고 미국의 경우 1940년 수준이다. 지난 200년 동안 일인당 평균 실제 소득은 (차드와 북한 같은 비극적인 경우를 포함하고도) 10배로 성장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일본과 스웨덴, 미국처럼 무역과 경제 향상을 전폭적으로 채택한 국가에서는 더욱 놀랍게도 그 숫자가 30배에 달한다.
이 수치는 1800년대 이후,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한 재화와 용역에서 발생한 근본적인 개선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미국 및 다른 선진국의 실질 임금 침체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것이다. 경제학자 도날드 보드록스와 마크 페리가 지면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공식 수치는 엄청난 물질적 진보의 실제 혜택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슈퍼마켓과 쇼핑몰의 선반에 있는 엄청난 풍요로움을 보라. 수입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마술같은 통신 및 엔터테인먼트 장치를 생각해 보라.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을 아는가? 오늘날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약이 다양하지만, 절망에 빠진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1905~1976)는 이 중 어느 것도 사용할 수 없었다. 고관절 대체술을 받았는가? 1980년에는 이 수술이 조잡한 실험 단계였다.
최근 두 세기에 누린 대호황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소득의 배가(단순한 인간이 처한 조건의 100% 개선)는 그리스의 영광과 장대한 로마 제국의 시기, 중국의 송나라와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장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소득인 하루 3,500원 이하의 비참한 일상으로 다시 떨어졌다. 통조림 제품에서 항우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 10,000%의 혁신적인 개선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는.
원인이 무엇인가? 흔히들 이데올로기를 사용해 설명하려 한다. 마르크스를 위시한 좌파의 경우, 그 열쇠는 착취라고 말한다. 1800년 이후 자본가들은 노동자로부터 잉여 가치를 탈취해 음침하고 사악한 공장에 투자했다. 반면 신성한 애덤 스미스를 위시한 우파는 절약이 그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야생의 하일랜드(역주: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인데, 하일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산악지방을 일컫는다.) 사람들도 단순히 자본을 축적할 만큼 절약하기만 하면, 1776년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높은 수준의 풍요"를 누리는 네덜란드인처럼 부유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작고한 경제학자 더글라스 노스는 최근 스미스의 주장을 더욱 확장해서 실제 특효약은 제도라고 제언했다. 이 이론이 현재 세계 은행에서 정설로 수용한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어떤 국가의 법률가에게 멋진 가운과 흰색 가발을 주면 영국 관습법 같은 것을 얻게 된다. 법률이 제정되고 부정부패는 사라지며 국가는 자본의 축적을 통해 가장 높은 수준의 풍요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현대 세계를 풍요롭게 한 것은 노동자에게서 뺏은 자본도, 도덕적으로 절약한 자본도, 일상적인 자본의 축적을 위한 제도도 아니었다. 자본과 법규는 당연히 필요했지만 노동력과 식량, 시간도 마찬가지로 필요했다.(역주: 원문의 arrow of time은 영국의 천문학자 아더 에딩턴이 주창한 개념이기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시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가진다.)
자본이 실제로 생산성을 확보한 것은 시골의 목수나 소년 전신 기사, 시애틀의 십대 컴퓨터 달인이 구체화한 것과 같은,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매트 리들리가 저서 "이성적 낙관론자"(2010)에서 기술한 것처럼, 지난 두 세기 동안 일어난 일은 "아이디어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었다. 철도라는 아이디어는 고압 증기 엔진과 석탄 탄광 레일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결합이었다. 잔디깎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소형 가솔린 엔진을 소형 기계 수확 기계와 결합시킨 것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발명을 통해 볼 수 있는 예는 끝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 있는 아이디어의 결합이 폭발적인 개선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방을 둘러보면 전등, 중앙 냉난방 시설, 기계가 짠 카펫, 플로트 공법으로 제작된 유리가 나타나기 이전의 그 어떤 것보다 큰 창문 등 19세기 이후에 나타난 수백 가지의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대학에서 형성한 인적 자본이나 수의사를 방문해 얻은 애완견의 건강은 또 어떠한가.
아이디어면 충분했다. 일단 철로나 에어컨, 현대적 연구 대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기만 하면, 명백한 수익성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자금을 얻는 것은 비교적 단순했다.
약 1860-1900년 경 뉴욕시 허드슨 가를 따라 늘어선 상점 앞 공간. 사진: Fotosearch/Getty Images
자본의 축적이나 법규로 충분했다면, 대호황은 기원전 2000년 메소포타미아나 서기 100년의 로마, 서기 800년의 바그다드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1500년까지, 그리고 여러 가지 방면에서 1700년까지 중국이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된 국가였다. 중국인들이 서방 세계보다 수백 년을 앞서 언덕을 오르내려 흐르는 운하에 수문을 만들었으며 이 운하 자체도 유럽에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길다. 중국의 자유 무역 지역과 법규는 관세와 폭정으로 분열되어 걸핏하면 싸우기 좋아하는 유럽의 조각난 지역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그러나 산업 혁명과 그에 따른 더욱 중요한 대호황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은 중국이 아니라 북서부 유럽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이디어가 그렇게 갑자기 바로 그때 그곳에서 관계를 맺기 시작했을까? 왜 이 모든 게 가장 먼저 약 1600년에 네덜란드에서, 그 후 약 1700년에 영국에서, 그리고 북미 식민지와 영국의 가난한 이웃 나라 스코틀랜드, 그리고 그 다음 벨기에와 북부 프랑스, 라인 지방에서 시작했을까?
그 대답은 한 마디로 "자유"이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독창적이다. 노예와 농노, 종속적인 여성, 귀족이나 관료 계급 구조에 경직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유럽의 심오한 미덕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일부 유럽의 정치적 사건에 의해 점점 더 많은 유럽인이 해방되었다. 루터의 개혁에서 1568년 이후 스페인에 반한 네덜란드의 저항과 1640년대 남북전쟁 당시 영국의 혼란을 거쳐 미국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인들은 서민들이 무언가 시도할 수 있도록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를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큰 개념을 사용하자면, 불완전하고 느리긴 하지만 평등이 도래하고 있었다. 이것은 장 자크 루소와 토마스 피케티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결과의 평등은 아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를 기념한 "스코틀랜드식" 법 앞의 평등과 사회적 존엄성의 평등이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립적으로 담대하게 개선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는 스미스가 기술한 것처럼 "평등과 자유, 정의의 자유민주적인 원칙에 따라 각 개인이 각자 방식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놀라운 개념, 즉 본래 의미가 "자유인의 가치"를 뜻하는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자유주의는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영국의 평등주의자 리처드 럼볼드는 1685년 교수형 집행인을 마주하고 "다른 사람 위에 있다는 신의 표시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한다. 등에 안장을 지고 세상에 오는 사람은 없으며, 그 사람 위에 올라타기 위해 부츠를 신거나 박차를 달고 세상에 오는 사람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를 조롱하기 위해 모인 군중 중 그에게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나, 톰 페인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같은 진보적인 사상가가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그 후 두 세기 동안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대호황은 이렇게 도래했다.
모두가 이런 발전과 그 이면의 아이디어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볼테르와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는 대담하게 무역의 자유를 옹호했다. 1830년대와 1840년대 쯤에는, 대부분 부르주아를 아버지로 둔 훨씬 커진 지식인 계급이 자신의 집안을 부유하게 만들고 자신의 여가를 가능하게 했던 자유를 조소하기 시작했다. 이 아들들은 이런 저런 유토피아를 빨리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해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을 옹호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우파의 지식인들은 중세를 상스러운 무역이 없고 소작료와 지배층이 다스렸던 비시장적 황금기로 그리며 향수를 품고 되돌아 보았다. 옛 시절에 대한 이런 보수적이고 낭만적인 관점은 지배 계급 내 우파의 위치와 잘 들어 맞는다. 19세기 후반 과학의 설명에 영향을 받은 우파는 사회적 다윈주의(Darwinism)와 우생학을 내세워 보통 사람의 자유와 존엄의 가치를 폄하하고 국가의 임무를 일개 개인 위에 올려 놓으면서 식민주의와 강제 불임, 전쟁의 정화 능력을 제시했다.
한편 좌파 진영에서는 지식인 계급의 다른 핵심 그룹에서,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다'는, 자유를 제한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좌파는 당연히 자신들이 이끄는 피끓는 행동, 악한 부르주아를 겨냥한 항의나 파업, 또는 혁명에 의한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진보에 중요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유럽 사회주의와 미국 진보주의 진영의 좌파는 규제나 신디칼리즘, 혹은 중앙 계획이나 공영화 하에서 모든 독점을 국가라는 이름의 최고 단일 독점으로 모아 부르주아의 육류 및 설탕과 철강 독점을 무산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 모든 심오한 사상이 유럽 지식인 계급의 마음을 휘젓는 동안, 좌파와 우파 모두, 그리고 상당수의 중도파의 경멸을 받았던 상업적 부르주아는 대호황과 현대 세계를 만들었다. 호황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개선을 가져 왔다. 그를 통해 사회적 다윈주의와 경제적 마르크스주의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소위 열등한 것으로 여겼던 민족, 계급, 인종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착취당한 프롤레타리아는 절망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와졌다. 보통 사람과 여성은 위로부터의 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간섭 없이 존중을 받을 때 엄청난 창조성을 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호황은 인류가 최초로 밀을 재배하고 말을 사육한 이래 가장 중요한 비종교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 어떤 제국의 흥망성쇠나 계급 투쟁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제국이 영국을 부유하게 하지 않았다. 미국의 성공은 노예에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권력이 풍요로움으로 이어지지도, 착취가 풍요로움의 동력도 아니었다. 프랑스식 결과의 평등을 향한 진보는 과세와 재분배가 아니라 스캇(Scot)의 완전히 다른 평등 개념에 의해 달성되었다. 진짜 동력은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확장이었다.
대호황은 역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것은 빈곤을 종식시킬 것이다. 상당 부분의 인류의 경우에는 이미 빈곤이 종식되었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일부를 채택한 중국과 인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럽 연합(EU)은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계획과 보호주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좋아하는 모든 국가는 정체되었다.
좌파와 우파, 중도파의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은 대호황을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과학은 아마도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여기는 "인간회복의 경제학(humanomics)"을 향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회복의 경제학은 차익거래나 진입의 경제학이나 수요 탄력성의 수학, 혹은 회귀 분석의 통계학을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어와 의미에 대한 연구와 그 연구가 호황에 미친 놀라운 기여를 덧붙인다.
이백년 동안 일인당 평균 세계 수입은 하루 3,500원에서 하루 4만원으로 놀랍도록 급증했다. 사진: Getty Images
어떤 공공 정책이 이 혁명을 더욱 성공시킬 것인가? 최소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사사로운 개인의 경제를 지켜주는 척 하는 것이 왕과 장관이 보여주는...최고의 무례함이다." 우리는 분명 빈곤층을 돕기 위해 스스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스미스 자신은 빈곤층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도움을 주었다. 기독교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유대교, 무슬림이나 힌두교의 자유주의는 이를 권장한다. 그러나 1800년 이후 빈곤층 풍요의 95%는 자선이 아니라 더욱 생산적인 경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켄터키 주 공화당 대변인 토마스 매씨가 작년 Reason이라는 잡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데에 정답이 있다: "사람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게 될까요?'라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 때문이 아니라 엔지니어 때문일 겁니다.'”
그의 말에 덧붙이자면 삶의 향상은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사서 높은 가격으로 파는 사업가, 새로운 가게에 대한 기회를 포착하는 미용사, 민첩하게 노스다코타를 오가는 석유 채굴 인부, 그리고 '내가 무역 분야에서 입증된 경제 향상의 기회를 잡도록 해주면 우리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기초적인 부르주아적 합의에 동의하는 모든 다른 서민에게서 비롯될 것이다.
맥 클로스키 박사는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역사, 영어 및 커뮤니케이션의 저명한 명예 교수이다. 이 글은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박사의 저서, "부르주아 평등: 어떻게 자본이나 제도가 아닌 아이디어가 세상을 풍요롭게 했나"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출처 : The Wall Street Journal
원제 : How the West (and the Rest) Got 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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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pnuprekmed12 안녕하세요 ! 합격...
제발 한국에 자유주의 정당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일정 부분 비슷한 새누리 찍는데 생기면 바로 갈아탑니다
온누리에 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투하해버렷
자유가 부를 가져다줬단 말이네요
이 기사에 대해서
자유가 부를 가져다 줬으니 무조건 좋다라고 바라보는 것도 좋은 시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공 정책이 이 혁명을 더욱 성공시킬 것인가? 최소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사사로운 개인의 경제를 지켜주는 척 하는 것이 왕과 장관이 보여주는...최고의 무례함이다." 우리는 분명 빈곤층을 돕기 위해 스스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스미스 자신은 빈곤층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도움을 주었다. 기독교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유대교, 무슬림이나 힌두교의 자유주의는 이를 권장한다. 그러나 1800년 이후 빈곤층 풍요의 95%는 자선이 아니라 더욱 생산적인 경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이 부분이 너무나도 위험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이게 바로 '시카고학파'의 텍스트인가요?
아까 '다같이 망해가고 있는 이유'라는 글 읽고 이거 읽으니 평행우주 같은 느낌이...
그래도 아이디어를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의 소중함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네요.
여기에 집중해보자.
편집장: 이광복
경력: 서울대 의대
오르비 창업
자유경제라는 명목으로 동네 슈퍼랑 재래시장이 모조리 망해가고 있는데 애오라지 자유만이 답은 아닌것 같군요
중세에는 봉건경제가 비무역적이며 현상유지를 지향해서 보수였던 반면에, 무역이 활발해지고 도시경제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상업주의는 진보였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자유적인 측면이었던 옛 부르주아 요소가 중세의 비시장적인(식민지적) 요소를 추구하여 정치적 우파인 보수가 되었고, 같은 부류의 관세철폐 등을 외치던 옛 부르주아적 요소는 비시장적인(규제주의적) 프랑스식의 절대평등을 외치며 진보가 되었다.
그런데 근대의 우파, 좌파, 중도와 달리, 현대세계를 만든 상업적 부르주아, 부르주아적 평등은 자본이나 제도가 아닌 아이디어이며 이는 자유 그 자체인 고전적 자유주의로 경제적 자유주의라고도 일컫는다.
이런 대호황의 역사는 착취적, 항의적 형태의 근대의 관점과 구분되며 자유적, 기회적 모습으로 오늘날을 이룩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글이 길어서 그냥 끌리는대로
요약했는데 이게 바로 애덤 스미스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인거군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