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 나의 첫사랑은, 2편
그렇게 진로 쌤의 주선 아닌 주선으로 나와 A는 처음 만났고
내 입장에선 상당히 수치스러운(?) 계기로 이루어진 만남이었기에 A와의 관계는 이 이상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음.
하지만 첫 만남에선 말까지 더듬으며 꽤나 쑥스러워 했던 A는 알고 보니 나와 정반대로 꽤나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음.
그 당시엔 산만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A의 성격 덕에 우린 금새 친구가 되었음.
대부분이 공감하겠지만 모든 시험이 끝난 학기 말은 참 즐거운 시기임.
수업 시간엔 쌤들이 틀어주시는 영화를 보고, 체육 시간엔 착한 체육 쌤을 졸라서 축구나 피구를 하러 나가거나 자유롭게 수다를 떨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그런 시기.
그 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음.
우리 반 남자애들은 날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축구를 하러 나가자며 체육 쌤을 졸랐고
여자 애들은 절대 나가기 싫다며 양보를 한다고 해도 강당까지라며 으름장을 놓았음.
하지만 그 날 강당은 다른 반이 이미 찜꽁을 해 둔 상태였고 우린 결국 운동장으로 나가게 되었음.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A의 반도 축구를 하러 나와 있었음.
친구들과 몸을 풀고 있는 A와 마주친 나는 가볍게 손인사를 했고 내 친구들과 스탠드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음.
앞서 말한 것처럼, 그날은 정말 추웠음.
어느 정도였냐 하면 머리카락까지 얼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음.
롱파카가 가려줄 수 없는 다리는 그 칼바람을 직방으로 맞아야 했고 나는 반사적 생존 본능으로 다리를 동동 거리기 시작했음.
그 때 내 위로 무언가 툭, 떨어졌음.
올려다 보니 A의 아이보리 색 파카였음.
이 파카 없이는 A에겐 검은 목티 한 장과 하얀 와이셔츠 한 장만 남을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벗나 생각하며 그를 빤히 쳐다보는 나에게 A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음.
"다리 덮어. 떨지 말고."
진짜 어처구니 없겠지만, 이게 내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첫사랑의 시작이었음.
드라마나 소설처럼 무언가 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도 대체 왜 이 순간 그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지 잘 모르겠음.
날 보며 천진하게 웃는 그 얼굴이 좀 잘생겨 보였던 건지, 다리를 덮은 따스한 다정이 좋았던 건지.
그 모든 게 아니라면, 어쩌면 그날 A의 파카에서 나던 비누향이 너무 좋았을지도...
그렇게 내 첫사랑은 아주 어이 없게 시작되었음.
3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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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남친 분은 집 근처 대학 다니셨던 거임여?
아니요 제대한지 얼마 안 된 휴학생입니다!
어제 올린 글 보시면 짧은 머리...로 나름 티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이 부족했나 보네요
그래서 본가에 있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