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독해의 기초_이해
어린 나이에 새로운 지식은 ‘00은 ~이다’라는 형태로 습득합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이다’, ‘일식이란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실 또는 현상을 알고 있음이 지식입니다. 자라나면서 사실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을 설명하는 지식을 얻습니다. 물체가 비행하도록 하기 위해 라이트형제가 부력이라는 것에 대해 고심했다는 사실과 부력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접하게 됩니다. 더 자라면 부력과 같은 개념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접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개념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그 지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데 사용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지식은 새로운 정보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생활에서 얻은 간단한 일상적 지식이기도 하고 학문적인 지식이기도 합니다. 학문적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는 데 활용할 지식이 없으므로 지식은 그것 자체를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더 축적할 수 있는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기만 하면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일상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러 학습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다면 참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적인 지식이든 학문적인 지식이든 새로운 지식은 필요하며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 수 있도록 기존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 이것도 하나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쌓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이해입니다. 이해란 새로운 정보를 자신의 지식 체계에 편입시키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정보와 관련이 있는 기존 지식을 연상한 다음 그 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해석합니다. 자세히 말하면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지식 체계 안의 방식대로 새로운 정보를 바꿔 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지식의 체계에 없었던 면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지식은 확장됩니다.
‘이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기의 학생들은 지식에 지식을 더하는 학습을 하는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대부분이 이해를 기존 지식으로 새로운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을 같이 보면서 이해에 어떻게 지식이 떠오르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펴내며 역사 연구의 기본 단위를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 설정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으므로, 영국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유럽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문명 중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가설들을 세웠다. 그리고 방대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그 가설들을 검증하여 문명의 발생과 성장 그리고 쇠퇴 요인들을 규명하려 하였다.
영국이 유럽 대륙의 서북쪽에 있는 섬나라라는 사실은 이 글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굵은 글씨체의 문장을 읽을 때 어떤 의아한 느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아함이 없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지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떠올렸고 그것과 글의 내용이 충돌하는 것이 없어서 심리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연상 지식을 이용해서 글을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글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기존 지식과 비교해서 새로운 것이 없을 때에는 지식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장 | 연상 지식 | 반응 |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 영국은 섬나라 | 사실 확인 |
하지만 영국의 지리에 관해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또는 영국의 지리에 관해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두 경우는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떠올릴 것이 없거나 떠올릴 수 없는 것이 매한가지입니다)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좀 더 기초적인 지식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1)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2)입니다.
문장 | 연상 지식 | 반응 |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 섬에 대한 개념
X | 1.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구나(영국이 섬나라)
2.대륙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or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다고? |
비록 영국이 섬나라라는 지식은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섬과 대륙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대륙과 떨어져 있다’는 말로부터 영국이 어떻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지식을 떠올릴 수 없다면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2와 같이 반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은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고 그것이 매우 친숙하여 적용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기 전부터 갖고 있던 지식뿐만 아니라 앞 문장에서 알게 된 지식(이전의 내용)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연상 여부에 따라 영향을 미칩니다.
문장 | 연상 지식 | 반응 |
영국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유럽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 영국은 서유럽에 속한다 +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다 |
근거 제공 |
‘영국의 역사를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읽었을 때 앞에서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다’는 내용을 떠올려서 글쓴이가 하는 말의 근거로 삼으면 그것이 바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다음 기회에 이런 과정을 하지 못해서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토인비가 세운 가설들의 중심축은 ‘도전과 응전’ 및 ‘창조적 소수와 대중의 모방’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환경의 도전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인간 집단이 문명을 발생시키고 성장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이 역경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창의적 행동은 역경을 당할 때 이를 이겨 내려는 분투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 단락을 읽으면 ‘도전’, ‘응전’의 사전적 의미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은 두 단어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의미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단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맥락을 살펴서 의미를 조정합니다. 마치 단단한 벽돌을 모양 그대로 쌓듯 단어가 글에서 사전적 의미를 고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기 이전에 기억하고 있었던 의미를 떠올리고 그것을 적용하여 맥락 속에서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단어나 표현이 다시 등장했을 때 동일한 의미로 소통합니다.
토인비는 이 가설이 단순하게 도전이 강력할수록 그 도전이 주는 자극의 강도가 커지고 응전의 효력도 이에 비례한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위 ‘세 가지 상호 관계의 비교’를 제시하여 이 가설을 보완하고 있다. 즉 도전의 강도가 지나치게 크면 응전이 성공적일 수 없게 되며, 반대로 너무 작을 경우에는 전혀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최적의 도전에서만 성공적인 응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전 단락에서 ‘도전’과 ‘응전’의 맥락상 의미가 부여 되었습니다. 따라서 위 단락에서는 도전과 응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도전의 강도가 적절할 때 응전이 나타난다는 가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또 다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부속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도전과 응전이라는 앞서 제시한 맥락상 의미를 이어진 내용 이해에 적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의 강도가 지나치게 크면 응전이 성공적일 수 없다’는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일상적인 지식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려움이 너무 클 때 대항조차 하지 못한 경험에 의해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별 것 아닌 일에는 특별히 대비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전의 강도가 클 때 응전이 성공적일 수 없다는 말에 스스로 ‘왜?’라고 질문하면서 위와 같은 일상적 지식을 떠올리면서 ‘도전이 크면 응전하지 않을 수 있겠군’하고 답하는 습관은 많은 학생에게 자동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왜 그렇지?’하고 질문하고 그 답을 본인의 생각 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 속에 이유가 나오지 않으면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 학생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이미 대부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응전을 통해 나타난 문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즉 새로운 도전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창조적 인물들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수의 대중까지 힘을 결집해야 한다. 이때 대중은 일종의 사회적 훈련인 ‘모방’을 통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모방은 모든 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문명을 발생시키지 못한 원시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토인비는 모방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방의 작용 방향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문명을 발생시키지 못한 원시 사회에서 모방은 선조들과 구세대를 향한다. 그리고 죽은 선조들은 살아 있는 연장자의 배후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그 권위를 강화해 준다. 그리하여 이 사회는 인습이 지배하게 되고 발전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모방이 창조적 소수에게로 향하는 사회에서는 인습의 권위를 인정하기 않으므로 문명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 마음속에 ‘답습’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답습의 뜻은 ‘예로부터 해 오던 방식이나 수법을 좇아 그대로 행함’입니다. 굵은 글씨체의 두 문장을 읽을 때 답습의 뜻이 떠오르고 이 개념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답습의 의미와 문장의 의미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기존 지식인 ‘답습’의 개념을 통해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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