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귤러 [655993]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7-01-23 00:52:11
조회수 6,464

반수 생각을 접었습니다. (긴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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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을 이렇게 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요... 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들어가며_

글을 잘 못씁니다. 재미도 없고요.

그래도 앞으로 글 쓸 일이 거의 없을것 같아 수험생활을 돌이켜볼 겸 글을 써봅니다.


1_

2013년도에 고교를 자퇴했습니다.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기에 고1때 결정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유라 함은, 음대 기악과(목관악기라고만 해두겠습니다.) 를 지망하고 있었기에 연습시간의 확보가 제일 큰 이유라 하겠습니다.

예술고는 학비 및 기타 비용의 부담으로 부모님과 상의 후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자퇴 절차가 끝난건 5월 13일입니다.

고교 재학생에서 중졸로 돌아왔습니다.


2_

자퇴 후 3개월은 특별한 의지와 점화 없이도 실기연습과 이론공부에 성실히 임했습니다.

그 이후는. 나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몸과 정신이 해이해졌습니다..

나름 비참한 모습이었기에 이 시기는 서술을 피하겠습니다

만,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었기에 다시 계획을 세우고 일어났다는 것을 적고 싶습니다.


2014년 4월 13일에 검정고시 시험을 치르고,

자퇴한지 정확히 1년째 되는 5월 13일에

합격을 통보받게 됩니다.

이제 고졸이 되었습니다.


3_

롱톤 연습,

스케일, 아르페지오, 인터벌 연습,

에튀드, 에튀드, 에튀드,

모차르트.


우리나라의 상위권 음대 목관악기 입시는

모차르트가 정복되지 않을 산처럼 우뚝 버티고 서있습니다.

(예종 플룻은 좀 변태같아서 논외로 치고, 서울대는 윤혜리 교수님이 음악학부를 꽉 잡은 뒤로 1차 모차르트 - 2차 현대곡 기조를 아마도 유지해가시는것 같습니다.)

플룻 2개, 오보 클라리넷 바순 1개씩

자신의 재능을 시험받는 콘체르토를 모든 입시생들이 붙잡게 됩니다.

15년도에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던 저도 마찬가지로모차르트를 잡았고, 신나게 손가락을 돌리며, riss에서 졸업논문을 뒤적이며 해석을 준비하던-


2015년의 어느 여름날.

두통이 찾아옵니다.


4_

음악이 전부였던 나로부터

모든것을 앗아간... 누구?

누구를 원망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쯤 쓰니 악기를 안 밝히는게 의미가 없긴 한데,

요구 압력이 높은 제 전공 악기 특성상

연주자의 신체에 일정 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견딜수 있지만,

제 혈관은 그것을 버틸수 없어 연주중 심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급격한 혈압의 변화를 일으키고-

각설하고, 연주가 불가능한 5~10분간의 발작과도 같은 두통, 악기에 입을 대고 호흡을 불어넣을 때마다 찾아오는 그 두통 때문에.


음악 전공을 포기했습니다.


5_

꽤 오래 방에 쳐박혔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드라마 각본이야'라고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매일 일어나서 울고, 자기 전에 울고, 폐인보다 못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이때의 비참함을 일기로 남겨둬서 참 다행이라고 상각합니다.

사람의 기억이 참 무서운게,

"현재도 행복하니까 과거도 행복했어 크케케켘크키키ㅔㅔ"

처럼, 망각뿐만 아니라 왜곡도 일어나더라고요.)


마음을 뒤덮는 어두운 생각들이

마지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치기 직전의 마지노선에 다다를 즈음에,

우연히 들은 음악이

쇼팽 op.10의 8번 이었습니다.

충, 충, 거리며 쇼팽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저였지만

그날부터 홀린듯 듣기 시작한 작곡가의 작품들이

정신에 가득찬 생각의 안개를 걷히게 해주었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어두운 마음들을

갈무리하고, 분류별로 잘 나눠 매듭을 지은 후에


2015년 10월 3일,

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6_

제가 내린 결정은 '수능' 이었습니다.

논리적인,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결정을 내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남은 선택지가 이것뿐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수능을 치러봤습니다. 접수 기간을 놓쳐 시험장에서는 풀지 못했지만,

현재 위치가 어디쯤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받은 등급은 국수B영 594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볼 때 아쉬운건, 고집 부리지 말고 문과를 했어야하나 싶은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에 말을 아끼겠습니다만, 자만 섞인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중략하자면

3월, 6월, 9월 모평을 치르는 동안

저는 끝까지 저 자신을 믿으며 계속 앞으로 걸었고

수능날까지 넘어지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수능날 수학과 물리에서 뒤로 넘어져 코가 깨지고 맹장이 터졌으며...

한국사는 또 왜 저런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2016년 11월 17일 16시 35분,

저는 교문에서 기다리시는 모친께 웃으며 달려가 안겼습니다.


7_

저런 점수를 받았기에, 실망감은 컸지만

그래도 반수하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홍대 자전에 원서를 냈습니다.

다행히 최초합이 떴고, 국장까지 고려하면 거의 무료로 다닐수 있기에

무휴학 반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찰나에

친구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MS 선임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신 그분의 지인 이야기를 하시며,

엔지니어적 센스를 가진 디자이너로써의 커리어를 가진, 그리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카네기멜론 조교수를 맡게 된 한국인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요지는, 의대를 가던 공대를 가던

결국 일반적인 루트로 취업을 하게 되는 경우

qol과 페이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게 될거라고 하시며

홍대 시각디자인과로 학과진입 하는 것을

조심스레 추천해 주셨습니다.


애초에 반수의 목적은 수학 점수 수복을 통한

의대 혹은 상위대학 공대였으나

진지하게 학부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르비를 2016년 3월 즈음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받은 대학에 대한 인식도

제 가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해봤지만,

'내 꼴리는 대로 간다' 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왔기에

제목처럼, 반수를 포기하고

홍대 캠퍼스자율전공에서 시각디자인과로 학과진입을 목표로 하여


2017년 1월 23일,

지금은 불타는 학부생활을 보낼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맺으며_

글을 쓰기 시작한지가 2시간이 되어가네요.

항상 초고를 쓰면 때려부수고 싶은 느낌인데

오늘도 예외는 아닌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공부를 재미있게 한 편이긴 한데,

다시 수험생활 보내는게 두려워서 재수/반수 안하는거 아니냐?? 물으시면

네, 자신 없어요. 하지만

수험생활을 보낼 자신이 없어서 위의 글로 반수 포기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습니다.

뭐.. 네 그렇다고요. 헤헤


약 1년동안 오르비에 계신 모든 분들께 신세 많이 졌습니다.

2017 수능보신 모든 수험생들께 늦었지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2018 수능을 보시는 모든 수험생들께

파이팅을 글에 담아 보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대성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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